고건축 목수팀 패시브 한옥이 새로운 희망을 짓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에너지를 절약하고 생산하며 저렴하면서도 시대를 담는 우리의 주택문화를 개척하고 싶습니다.

집은 마음의 안식처이다. 낮에 일하고 저녁에 돌아가 쉬는 곳, 가족과의 만남과 휴식이 있는 곳이다. 하루시간의 3분의 2를 보내므로 일생의 70%를 머물러야 하는 공간이다. 의식주 가운데 맨 마지막에 위치해 있지만 사실은 주거공간이 이처럼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아파트 연립·다세대·다가구주택 등 공동주택에서 사는 국민이 60%를 넘지만 불과 30년 전만해도 단독주택이 대부분이었다. 그때도 한옥은 시골 농어촌에서마저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한옥은 6·25전쟁 중에 전국토가 초토화하면서 대부분 불타 버렸고 새로 지은 주택은 한옥이 아니라 효율성이 우수한 양옥이었다. 새마을운동 시절엔 남아있는 한옥(초가집)들도 지붕을 함석이나 슬레이트로 갈아입혀졌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의 한옥은 거의 현대식 건물과 양옥으로 교체됐다.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이 몸을 뉘어온 한옥은 버림을 받았던 처지였다. 지금 사람들이 한옥에 관심을 갖고 다시 찾는 것은 결국 돌고 돌아 그 원점인 제집으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한옥에 담긴 지혜는 과학이다

한옥은 반만년 역사를 가진 한민족의 뛰어난 창조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삶의 지혜와 과학이 한옥 곳곳에 스며있다.

지금 한국은 5층 이상의 목조건물을 짓지 못한다. 기술이 실전됐다. 그러나 전통 건축술은 대단한 것이었다. 일본 법륭사의 목조 5층 건축물(오중탑)이 우람한 자태를 자랑하지만, 1300여 년 전에 신라는 황룡사 9층 목조탑을 지었다. 한 변이 22m, 각 층의 높이가 8m, 총 80m가 넘는 목조건물을 지었다는 것은 지금도 미스터리다. 그 하중을 이겨내고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버릴 때(1238년)까지 540년 동안이나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목조건축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 한옥은 위치 선정부터 현대건축과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한다. 동남향에 배산임수(산을 등지고 앞에 시내가 흐르는 지형)를 기본적 입지로 보았다. 조선조 후기 실학자인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擇里志)’에는 사대부가 살만한 곳을 선택할 때는 지리(地利·자연환경), 생리(生利·생산물), 인심(人心·토착민들의 기질), 산수(山水·주변을 둘러싼 풍경) 등 4가지를 살펴야 한다고 서술했다. 옛날 마을은 기본적으로 이 기준에 입각해 자리를 잡았다.

터를 잡는 법도 자연에 순응한다는 원칙을 따르며, 기초를 닦는 일도 역시 현대건축과 전혀 다르다. 요즘 재개발아파트 건축현장을 보면 바위산도 암반을 수십m씩 파헤쳐 원형을 도저히 알아볼 수 없게 만든다. 산 하나를 아예 통째로 없애고 평지로 만들기도 한다. 한옥은 절대 터를 함부로 깎아내지 않는다.

자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약간의 손질만 하고, 비스듬한 곳엔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집을 짓는다. 한옥은 일본이나 중국의 건축은 평지에 그대로 올리는 것과 달리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짓는 게 특징이다. 배수, 배습, 통풍, 전망 등을 고려한 부분이다.

◇자연스런 대기 흐름 유도해 여름에 시원해

한옥의 앞쪽은 양, 뒤쪽은 음으로서 앞은 밝고 건조하게, 뒤는 그늘지고 습하게 조성함으로써 한여름 후원에서 대청마루를 거쳐 마당을 향하는 대류현상을 일으킴으로써 자연적인 통풍이 이뤄지게 한다. 선풍기, 에어컨을 능가하는 자연 냉방장치이다. 대청마루 밑도 공기가 잘 통하도록 북쪽에 바람구멍을 낸다.

한옥의 처마도 태양광선(햇볕)을 차단하고 끌어들이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통 한옥의 처마는 대청마루와 기단을 넘어 마당에까지 닿는다. 이 처마의 주요 기능은 여름철 땡볕을 차단해 집 전체가 그늘에 들게 함으로써 온도를 낮추게 하는데 있다. 반면에 처마가 길어도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는 겨울철에 햇볕이 방안에까지 도달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처마는 또 여름엔 시원한 공기가, 겨울엔 따뜻한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구들과 굴뚝에도 절묘한 과학원리 담겨 있어

구들장과 굴뚝에도 한옥의 과학이 숨어 있다. 구들은 한옥만이 가진 온돌이라는 난방시스템을 구성하는 독특한 장치이다. 방바닥을 덥혀 난방을 하는 온돌 방식은 세계의 모든 주거구조 가운데 한옥이 유일하다. 온돌(ondol)이라는 단어는 우리말 그대로 웹스터 브리태니커 사전에도 올라 있다. 한옥의 특징 중의 하나가 온돌이라는 난방구조, 즉 북방계 주거시설과 대청이라는 냉방기능을 가진 남방계 요소가 한 건축물에 결합돼 있다는 것이다.

온돌을 구성하는 시설이 구들과 굴뚝이다. 부엌에 부뚜막을 놓아 구들의 입구인 부뚜막 아궁이에 불을 때서 난방과 취사가 동시에 이뤄진다. 연료의 효율을 극대화했다. 취사 겸 난방시설인 부뚜막은 한옥에서나 볼 수 있다. 한옥에서 사용하는 연료는 주로 식물성으로 불에 타는 건 뭐든지 쓸 수 있다.

아궁이에서 굴뚝에 이르는 불길(방고래)을 따라 지나가던 가열된 공기와 연기에는 재티가 섞여 있다. 이 재티는 고래 끝에 깊게 파여진 바닥, 즉 개자리에 모여 떨어지고 굴뚝으로 빠져나가기 직전에 굴뚝 바닥에 파인 두 번째 개자리에서 또 한 번 걸러져 맑은 연기만 굴뚝으로 나가게 된다.

아궁이-구들-개자리-굴뚝에 이르기까지 대기의 오염을 방지하는 방진 장치가 돼 있다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아주 깊은 공학적 기능을 발휘하게 설계한 선조들의 지혜가 감탄을 자아낸다.

한옥의 온돌은 아무거나 태울 수 있는 연료조달의 용이성, 쓰레기 소각 기능, 취사와 난방을 겸하는 경제성, 연기에서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대기오염 방지기능 등을 갖추고 있어 현 시대의 시각으로 봐도 아주 우수한 다목적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28호(5월30일자)에 실린 것입니다.